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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며기 스파이/독일

동사무소에서 박사 학위 인정받기(?)

며긴 영국에서 박사를 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동료들의 이메일 서명을 보면 "{이름} {학위약자}" 형식을 쓴다. 갈며기도 첫 직장생활을 영국에서 시작해서인지, "갈며기 Ph.D."라고 이메일 서명을 쓴다. 어떤 동료들은 굳이 박사 아니래도 학부며 석사 학위까지 다 갖다 붙여서 대체 이게 무슨 학위 약자인건가, 싶을때도 있긴 하다. 며기도 가방끈이라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게 기니까 원한다면 "갈며기 BSc MRes PhD" 다 갖다 붙일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건 쫌 지저분해보여서 걍 맨 마지막 학위만 쓴다. 그런데 가끔 독일 동료들로부터 받는 이메일을 보면 서명이 "{학위약자} {이름}" 형식으로 되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Dr. 갈며기"라는건데, 솔직히 좀 웃기긴 하다....;; 나 박사라고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ㅎㅎㅎ 박사라고 딱히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런데 독일 와서 보니 이 "Dr"라는 타이틀에 모종의 룰이 있다!! 실질적 이득은 하나도 없는 대신, 이 나라 사람들은 일단 박사라고 하면 존경부터 하고 본다. 그 존경이라는게 어느 수준이냐면, 어떤 정치인이 허위로 박사 타이틀 붙이고 있다가 적발되어 정치판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메르켈 다음 총리가 될 수 있었을 인재였다고 하는데. 물론 학력 위조를 했으니 당연히 문제 사항이긴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저 박사 타이틀이 얼마나 존경의 대상이면 잘 나가는 정치인이 학력 위조를 할 정도냐는 거다. 심지어 병원 예약 같은걸 잡을 때도 박사라 하면 상대적 우선권을 준다는 등의 루머가 있긴 하다. 그러므로 일단 박사를 땄으면 타이틀 붙이는게 이득인거다! 


당연하게도, 보험 가입이라던가 은행 계좌 오픈 등등의 시점에서 타이틀란에 "Dr" 붙이면 되니까 쉽긴 하다. 그런데 역시 관료주의의 독일답게 저 Dr 타이틀에도 법이 마련되어 있다. 이 법에 어긋나는 상황에서 Dr 타이틀을 붙였다간 위법이 되고 만다! 저걸 누가 일일이 감시하고 있겠냐마는, 일단 대충 찾아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Dr 타이틀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다: 


1. 독일 대학에서 박사 한 사람들

2. 독일 문화교육부?가 인정하는 EU 국가의 대학에서 박사 한 사람들


자,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 - 하버드는 미국인데? 하버드에서 박사한 건 Dr로 인정 안해줘??? 


놀랍게도 안해준다. 베를린에서 박사 학위한 친구가 자기 학과에 프린스턴에서 박사 하고 온 교수가 있는데 앞에 Dr 못 단다고 한다;;; 그냥 이름 뒤에 PhD 다는게 전부다... 물론 취직활동에서는 박사학위 소지자임을 밝힐 수 있지만 명함이나 명패 등에 Dr를 못 단다고 한다...;;;


다행히 며기는 영국 (천만다행으로 아직 EU) 에서 박사를 했으므로 ID카드를 만들 때 이 Dr 타이틀을 넣고 싶었다.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서 영국 학위증을 전문 번역가를 통해 번역한 다음 관청에 들고 갔다. 박사 타이틀이 왜 존경받는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왜냐면 독일 공무원들은 효율 낮고 똑똑하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박사 학위를 독어로 번역해줘도 못 알아먹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덕분에 1회차, 박사 타이틀 인정받기 실패... 


번역가를 다시 컨택해서 다른 단어를 선택해 번역을 받고 번역가의 특별 설명과 도움될 만한 웹사이트 발췌본을 들고 2차 시도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이 공무원이 번역본과 원본을 들고 자기 매니저에게 가서 20분동안 상담을 하고 온다. 그러고도 이걸 인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정하지 못했다며 좀 더 알아본 후 이메일로 대답해주겠다고 한다 ㅎㄷㄷ 


일단 그래서 ID카드 신청을 하고 다음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이메일이 점심때 쯤 와서 박사 타이틀 붙이는 것 승인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게 다행인건지 뭔지, 멀쩡히 박사 잘 따 놓고 동네 동사무소에서 이걸 인정하냐 마냐를 결정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쨋든 2회차에 성공해서 더 시간 낭비 안해도 되니 좋긴한데, 역시 얘네들 별 짓 다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글구 며기 독어 어버버하는데 기껏 Dr 달았다고 안해주던 존경을 받을까도 의문이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