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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며기 스파이/영국

영국에서 취업하기

제목을 거창하게 영국에서 취업하기라고 달긴 했지만 한국 식당 서빙 같은 아르바이트식 취업에 대한 내용은 며기가 아는 바가 없어 생략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직장에 사무직이나 연구직으로 취업하는 상황으로 한정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다만 최근의 경험이 아니라 몇 년 전의 상황/경험이었으므로 그냥 참고만 하고 최근의 상황은 재확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국에서 취업에 가장 커다란 조건은 비자/영주권/시민권 유무이다. 일단 실력이 동등한 경쟁자 2명이라면 회사에서는 일단 영국시민/EU시민 (brexit이후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을 우선적으로 뽑는다. 하다못해 영주권이라도 있어야 한다. 비자 소지자라면 회사의 지원 없이 일할 수 있는 비자 소지자이어야 한다. 아주 간간히 비자 서포팅을 해주는 회사들이 있긴 한데 그건 어지간히 인력이 급하거나 지원자의 역량이 신급으로 좋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냥 처음부터 비자가 필요한 사람들을 아예 안 받아버리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단, 대학의 연구직 (research assistant, post-doc, 교수 등)은 비교적 이런 비자 서포팅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또 영국에서 부족 직군에 취업하는 경우도 약간의 비자 메리트가 있을 수 있다. 즉, 간단히 말해 영국에서 이미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상태가 아니라면, 또는 회사가 비자 서포트를 해주겠다고 나선 경우가 아니라면 제 3국가 출신 (비영국/비EU국가) 사람들에게는 영국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나 다름 없다. 차라리 사업을 한다면 사업비자라도 지원할 수 있을텐데 아마 일정액 이상의 자본금이 필수인 것 같다. 따라서 막 대학을 졸업한 일반 학생들이 사업비자 루트로 가기엔 금/은수저가 아닌 이상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1~2년간 취업활동이 가능한 비자를 내어주는 제도가 있었다 (post-study permit). 이 비자를 이용해 일단 회사에 고용되어 실력을 검증받아 나중에 비자 연장할 때가 되면 회사한테 비자 서포트를 해 달라고 하는 생각으로 취업을 하려는 학생들이 분명 있긴 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은, 일부 회사들이 이 점을 악용해서 1~2년간 실컷 써먹고 비자 서포트를 안 해줘버리거나 (사실상의 해고) 처음부터 계약을 1~2년만 해버리고 재계약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피고용인 입장에서 영국에서 1~2년만 실무 경험을 쌓고 자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면 이런 상황이라도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영국에서 장기적인 정착을 노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며기의 친구도 이런 식으로 고용되었다가 post-study permit이 끝나기 직전에 해고되어 새 직장을 찾느라 진땀 뺐었던 케이스가 있다 (다행히 이 친구는 머리가 엄청 좋아서 얼른 다른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이 글이 한국어로 작성되었으므로 독자들은 대부분 한국 시민이라고 가정하겠다 (한국어를 할줄 아는 비한국시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즉, 현재 한국에 있거나 한국에서 영국 취업을 생각하거나, 영국에 있는 한국시민으로 당장 취업비자/영주권이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겠다. 당장 취업비자/영주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부터 만들라고 하는 조언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므로 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출발선부터 불리한 상황에서 영국/EU 출신 구직자와 어떻게 경쟁하는 편이 그나마 취업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1. 대학 자리를 지원해보자

그나마 외국인 비자 서포트를 잘해주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대신 페이는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긴 하다 (영리 집단이 아니니 별 수 없다). 5년동안 좀 낮은 페이 감수하면서 버티면 영주권 나오고, 영주권 생기면 다른 취업자리 알아보기가 수월할 수 있다. 


2. 영국의 부족 직군을 노려보자

영국에서 부족한 직군으로 명시된 직종은 비교적 비자가 잘 나오는 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부족직군이라면 의료계열 직군이 있다 (최근 Brexit 여파로 EU출신 의사/간호사들이 빠져나가느라 더더욱). 현재 한국의 의사 면허가 영국에서 인정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면허 상호 인정 되도록 만드려는 정부 간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런 식의 부족직군 취업을 노려보는 것이 비자 문제의 극복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3. 글로벌 회사의 한국 지사에 입사한 후 영국 지사로의 발령을 노려보자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니 하나의 방법으로서 언급한다. 사실, 대다수의 글로벌 회사들이 지사별로 독립적으로 인원을 뽑기 때문에 intra-company transfer가 얼마나 쉬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비자 없는 상태에서 영국 취업보다는 이 방법이 좀 더 쉬울 것 같긴 하다. 


4. 한국어가 필요한 회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보자

아무리 최근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많아진다고는 하지만 k-pop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역시 한국어는 소수 언어이긴 하다. 한국어에 다른 아시아 언어까지 할 줄 안다면 이 부분을 이용해서 한국/아시아 쪽과 교류가 많거나 그 쪽으로 사세 확장을 하려는 회사 자리를 공략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왜 한국인을 고용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하고, 한국어/아시아어에 능숙한 영국/EU시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 단, 언어 능력 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가 가능한 qualification이나 경험도 있어야 더 좋겠지만. 


5.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쫓고, 어떤 사람들은 생활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아 실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어떤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반드시 영국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도 하다. 솔직히 출발선부터 불리한 취업 경쟁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직장을 얻기를 바란다면 그건 과욕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즉, 영국에서 사는 것이 일단 가장 중요한 목표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낮은 조건의 직장이라도, 또는 하고 싶은 업무가 아니라도 비자 서포트를 해 줄 확률이 높은 회사라면, 약간의 유도리를 발휘해 지원해보는 편이 취업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겠다.   

 

사실 brexit결정 이후 영국의 메리트가 많이 떨어졌고, 많은 EU시민들이 빠져나오는 상태이니 분명 제 3국 시민에게 기회가 생길수도 있겠다. 물론 여전히 취업시장에서의 우선권은 영국 시민들이 가져가겠지만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은 한국이 훨씬 높고 (약 80%의 고등학생이 대학을 진학하는게 한국이면 영국은 한 50%정도?) 요즘엔 다들 한국사람이어도 영어 잘하니 예전에 비해 영국 취업시장 문턱이 살짝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